성민경 이름박사 한국좋은이름연구소 이름과 운명 다섯번째 이야기
 
 
 

    사업의 몰락,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다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 한 통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기는 서울인데요, 성민경 선생님 맞으십니까? 오늘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사무실에 계시겠습니까?”

성급하면서도 간절한 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오전에는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고, 오후부터 사무실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장 새마을호를 타고 내려오겠다며 약도를 부탁했다.

그렇게 약 다섯 시간이 흘렀을까.
훤칠한 중년의 남자와 단정한 중년의 여인이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부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들은,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와 오늘 이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편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저는 건설업으로 수십억을 벌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방학마다 외국 연수를 보냈고, 돈 걱정이란 걸 몰랐지요. 그런데 작년부터 건설 경기 침체와 미분양 사태가 겹치면서 결국 부도가 터졌습니다. 지금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말끝은 떨렸고,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부도가 나니 채권자들이 전국을 쫓아다니며 저를 찾고, 심지어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와 부모를 내놓으라 소리치더군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고 가출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로서… 정말 죄스럽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선생님께서 이름 석 자로 운명을 바꾸어주는 분이라는 기사를 읽고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저도 이름을 바꾸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나는 그의 이름을 차분히 감정해 보았다.
“본인의 이름은 초년에는 부모 덕과 재물운이 따르지만, 40대 중반 이후에는 큰 실패로 이어지는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의 몰락은 단순한 경기 불황만이 아니라 이름 속에 이미 예정된 흐름이었습니다. 몇 년 전이라도 이름을 바꾸었다면 이 불행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부는 말없이 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구명줄을 잡듯 내 손을 붙들며 간절히 부탁했다.
“선생님, 제발 저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의 간절한 눈빛에 내 마음도 움직였다. 나는 신중하게 답했다.
“서울로 돌아가십시오. 며칠 동안 충분히 연구하여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 등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름을 쓰는 방법도 함께 알려드리겠습니다.”

며칠 동안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이름을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이름을 완성하여 부부에게 보내주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바로 그 남자였다.
“선생님, 제가 다시 성공했습니다! 이름을 받고 유통업을 시작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직원이 25명으로 늘었고, 매출은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건설업으로 잃었던 돈을 이제 다시 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 덕분입니다. 내일 업무차 지방에 내려가니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다시 살아난 사람만이 가진 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날 나는 깊은 보람을 느꼈다. 이름이 단순한 부호나 소리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름을 통해 희망을 잃고, 또 누군가는 이름을 통해 다시 세워진다.

몰락과 재기의 극적인 전환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작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짓는 일이다.”

이름이 바뀌고 운명이 달라져 가정이 다시 웃음을 되찾는 순간, 그 어떤 재물보다 값진 보람이 내 마음에 차올랐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 순간마다, 그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고 가정을 세우는 씨앗이 되기를 기도한다.

(저작권 : 한국좋은이름연구소 성민경 이름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