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존재는 언제나 서로의 거울이다.
서로의 웃음에 기쁨을 느끼고, 서로의 고통에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일까, 그날 내 앞에 앉아 있던 젊은 부부는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남편과 아내는 대학 시절 미팅에서 만나 7년 동안 연애를 이어왔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다.
아직은 신혼의 달콤함이 가득한 시기라 그런지, 두 사람의 얼굴은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눈빛은 서로에게서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희는 철학관도 몇 군데 다녀봤는데, 사주와 궁합이 참 잘 맞는다고 하더라고요. 부부 화목하고 가정에 행운이 가득한 찰떡궁합이라고요. 그런데 사주가 좋아도 이름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아닐까요? 저희 이름도 감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 순간 잠시 망설였다.
앞일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이름 감정을 원했다. 결국 나는 그들의 이름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남편의 이름은 굉장히 길한 이름이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는 강인한 기운을 지녔고, 재물운과 사회적 명예까지 따라오는 이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이름은 정반대였다.
남편과 자식의 수명을 짧게 만들고, 홀로 출세하는 과부의 운명을 담고 있었다. 이름 속 기운이 남편의 기운을 갉아먹고 결국 불행을 초래하는 형상이었다.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저희는 사주도 좋고 궁합도 잘 맞는데, 이름이 조금 나쁘다고 정말 그렇게 큰 영향을 주나요?”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사주팔자는 몸매이고, 이름은 옷입니다. 아무리 몸매가 좋아도 옷을 잘못 입으면 촌스러워 보이듯, 아무리 사주가 좋아도 이름이 맞지 않으면 운명이 흐려집니다. 반대로 몸매가 조금 부족해도 옷을 잘 입으면 더 멋스러워 보이지요. 선천적인 운명보다 후천적인 운명, 즉 이름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곡히 당부했다.
“새댁, 지금 이름은 남편의 수명을 짧게 만드는 이름입니다. 빨리 개명해서 남편의 불행을 막으세요. 불행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고, 아내 역시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은 묵직한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불안했다.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아내 혼자 다시 찾아왔다. 그녀의 눈은 이미 많은 눈물을 흘린 듯 퉁퉁 부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은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때 말씀하신 게 자꾸 떠올라서, 이렇게라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 남편이… 얼마 전 서울 출장을 다녀오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현장에서…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차라리 내 입이 틀어져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아내는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사주도 좋고, 성품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제 이름이 남편의 수명을 짧게 만든다는 그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습니다. 이제 스물여덟인데, 청상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 개명이라도 해서 다시 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파동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 해도, 조화롭지 못한 이름 하나로 삶의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젊은 부부는 분명 행복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 속에 숨어 있던 불길한 그림자는 결국 비극을 불러왔다. 물론 모든 것을 이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름은 분명히 운명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신중해야 하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작명가로서 이름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한 동시에,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한 줄기 바람 같은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 사건은 내게 더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가정의 운명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음을 다시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짓거나 감정할 때, 이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름 하나가 삶을 꽃피울 수도, 시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저작권 : 한국좋은이름연구소 성민경 이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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